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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일본 자매학교 방문기 - 2학년 6반 황지원
작성자 최경화 등록일 2018.11.30

가장 먼저 일본이라는 나라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떠났던 오사카 여행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이전엔 일본이라는 나라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지라 그때의 여행 또한 그저 그런 마음가짐으로 떠났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일본여행에서, 나는 기존에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고 느끼게 되었다. 질서정연한 사람들, 깨끗한 길거리, 친절한 서비스 등, 구태여 사치스럽고 화려하지 않은, 일본만의 소박하면서도 세심한, 그런 분위기. 한국과는 비슷하면서도 여러모로 다른 일본의 문화에 푹 빠져들게 된 나는 이후에도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일본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일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여러 모습을 만나왔다.

예를 들자면 먼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인 건축물과의 만남을 들 수 있겠다. 예로부터 한국 의 전통 건축 방법에서는 목수가 건축가의 역할을 모두 도맡아 했기 때문에 현대의 한국에서도 건축가라는 직업이예술가라기 보단기술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때문에 일찍이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에 비해 건축가의 활동이 제한되어있었다. 게다가 김수근과 김중업과 같은 한국의 1세대 건축가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군사정권의 탄압과 규제가 심했던 시절이라 국내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던 점에 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게 된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이었다. 노출 콘크리트와 빛이라는 단순하고도 과감한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의 건축물의 매력에 나는 사로잡혀버렸고, 이후 일본으로 떠난 또 한 번의 여행은 나를 안도 다다오와 여러 일본 건축가들의 작품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여행을 다니면서도 언제나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내가 떠난 여행은관광이었다는 것이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오늘날, 누구나 갈 수 있으며 누구나 볼 수 있는 관광코스는 더 이상 나에게 색다르고 신선한 경험을 제공해주지 못했다.‘관광객으로서 바라보는 일본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일본 사람들이 바라보는 일본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즈음, 가야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일본 히가시고교와의 자매결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되자마자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선배님들의 히가시고교 방문기를 찾아보았다. 우리 학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학교와 교실, 교복, 학생들, 선생님들. 내가 지금껏 다녀왔던 일본여행처럼 관광객으로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그 모습에 매료되어버렸고, 나도 선배님들처럼 히가시고교에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국제교류학생으로서 방문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여러 노력과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8학년도가 되어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가야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계속 바라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어진 과제와 면접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준비했다. 다행히도 나에게 히가시고교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내가 그토록 기대해오던 일본의 여러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지고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1일차-후쿠오카에 도착, 가고시마로 출발

김해공항에서 출발한 우리는 오후 3시경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방문하는 히가시고교가 위치한 가고시마현의 가고시마시로 향하는 직항 노선이 없기 때문에 가고시마를 방문하려면 이렇게 후쿠오카 공항을 거쳐 신칸센을 타고 이동해야했다.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향한 곳은 후쿠오카의 중심이라 부를 수 있는 하카타역, 우리가 신칸센을 타고 가고시마로 향하기 위해 들러야할 곳이었다. 이 하카타역은 1889년에 건설된 1대 건물 이후로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러 번 철거와 신축, 확장을 거쳐 현재의 4대 역사를 사용하고 있다고한다. 19871030일 부산역과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하는데, 두 건물 모두 외벽의 대부분을 통유리로 뒤덮는 커튼 월 양식을 사용해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카타역에서 신칸센 표를 구매한 우리는 가고시마 츄오역을 종점으로 두고 있는 큐슈 신칸센을 타고 가고시마를 향해 떠났다. 여러 번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만을 이용해 이동했던지라 신칸센을 타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한국의 KTX 와 비교했을 때 훨씬 넓고 쾌적한 환경의 신칸센을 보니 우리나라의 철도청이 좀 더 기내 환경 설비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탔던 신칸센 800계 전동차는 최고속도 260km로 달리는 고속 열차였는데도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시끄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의 정숙성을 보여줬다. 또 기차를 타고 가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기차역에서 판매하는에키벤을 먹었다. 일본의 에키벤은 생산되는 지역의 특산물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먹었던 큐슈산 소고기로 만든 돈카츠와 하얀 쌀밥은 역에서 판매하는 단순한 도시락 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맛이 있었다.

이후 1시간 40분정도 신칸센을 타고 이동한 뒤, 목적지인 가고시마 츄오역에서 하차했다. 역에서는 히가시고교의 선생님 두 분이 우리를 마중 나와 계셨다. 우리는 두 선생님의 차에 나누어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가 굉장히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다, 또 숙소의 종업원분들이 너무나도 친절히 대해주셔서 45일간 머무는 동안 전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히가시고교의 학생들, 그리고 태국, 중국 학교의 학생들과 만나 시내 관광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일차-일본, 태국, 중국 학생들과의 가고시마 시내 관광

2일째 아침에는 숙소의 식당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그다지 큰 규모의 숙소와 식당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으며 식당에 들어섰는데, 이게 웬걸. 내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 보이는 식사가 차려져있었다. 즉석에서 토치로 불을 붙여 구워먹는 색다른 방식의 계란과 베이컨, 그리고 신선한 생선과 계란말이, 숙소에서의 아침 식사는 1일째의 오랜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리고 숙소에서 열릴 3개국 학생들의 미팅 전 남은 약간의 시간을 이용해 영호와 함께 숙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 굉장히 조용했는데, 덕분에 평소의 일본 여행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일본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자연스러운 마을의 모습을 카메라 셔터에 담을 수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의 창문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본만의 그 모습.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너무나도 반갑고 신기했다.

그렇게 숙소 근처를 걷다 한적한 주차장이 나타났는데, 주차장에 나뒹구는 쓰레기봉투와 까마귀를 보아하니 여기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나 일본에서나 길거리와 쓰레기봉투를 점령하는 것은 사실상 비둘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도시에 많은 수의 개체수가 존재하는 것이 비둘기인데, 어째선지 우리가 묵었던 숙소 주변에서는 비둘기를 단 한 마리도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엄청난 수의 까마귀가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문제는 비둘기와 까마귀의 체급차이이다. 비둘기는 날개를 펼친 몸길이가 약 50cm 내외의 중소형 조류인데, 한국과 일본에 서식하는 까마귀는큰까마귀란 종인데 이 종의 몸길이는 70cm 내외, 날개를 펼친 길이는 1m를 훌쩍 넘긴다. 심지어 무리지어 활동을 하기에 비둘기 한두 마리와는 차원이 다른 포스를 풍긴다. 한국에서 길을 걷다 비둘기를 만나 더럽다는 느낌으로 기피하던 때와는 달리, 이번 가고시마에서는 말 그대로 무서워서 새를 피해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무사히(?) 까마귀 때를 피해 숙소 근처의 작은 마트를 방문했다. 한국의 평범한 작은 동네 마트와 크게 다른점은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상품 배치, 어디선가 본 듯한 물건 등등. 다만 약간의 다른 점들이라면, 기본적으로 모든 계산대가 자동화 되어있어 점원은 그저 바코드를 찍어주기만 할 뿐, 결제와 거스름돈을 받는 것은 모두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한국의 동네 마트와는 다르게 매일 마다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간편한 도시락이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제품인데다가 생각보다 다양하고 신선한 반찬, 그리고 저렴한 가격이 신기해보였다. 그리고 마트 안을 둘러보다 한국인인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요뽀끼라는 제품을 발견했는데, 이런 작은 마트에서도 우리나라의 제품이 진열되어있다는 사실이 왠지 뿌듯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뒤, 숙소의 세미나실에서 일본, 태국, 중국 학생들과의 짧은 미팅이 있었다. 어색한 일본어와 어색한 한국어가 난무하던 때에, 우린 손짓 발짓으로 어찌어찌 통성명을 이어나갔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짧은 미팅을 마쳤다. 그리곤 각국의 학생들 마다 미리 배정된 대로 몇 명씩 나누어져 일본 히가시고교 학생들의 안내를 받으며 가고시마 시내 관광을 떠났다. 나와 영호는 히가시고등학교 3학년인 토모카와 시호와 함께 한 조가 되어 관광을 시작했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이는 모두 01년생으로 같았다) 아래는 토모카와 시호가 건네준 선물, 맛있는 간식이 들어있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가고시마 수족관, 여타 다른 수족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고래상어와 돌고래 쇼로 유명한 곳이었다. 우리는 토모카와 시호의 안내를 받으며 버스를 타고 가고시마 수족관으로 향했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가고시마 수족관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일전에 다녀왔었던 오사카의 가이유칸과 비교했을 때 규모가 작긴 했지만, 작은 규모 에도 불구하고 관람 노선에 따라 테마에 맞춰 전시물을 배치하고 각 구간마다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등, 관람객이 최대한의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작년 즈음에 부산 아쿠아리움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비싼 입장료에 비해 막상 볼게 별로 없어 크게 실망했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가고시마 수족관은 입장료부터 전시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나를 만족시켜줬다. 게다가 오랜 관람에 적당히 지쳐갈 즈음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실이 꽤나 잘 갖추어져있어 음료 등의 간식을 먹으며 쉴 수 있었다는 점과 관람을 마치고 바로 돌고래 쇼를 볼 수 있도록 지어져있어 별도의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이동하기 편리했다는 사소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2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수족관을 둘러본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토모카와 시호가 추천해준샤브샤브 바이킹에 밥을 먹으러 갔다. 여기서 바이킹은 일본어로 뷔페라는 뜻을 의미한다. 이단어의 유래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을 개점한제국 호텔에서 사내공모를 통해바이킹레스토랑이란 이름으로 개점한 후 상당한 인기를 얻어 일본에서 뷔페를 뜻하는 단어로 굳어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영호는 식당으로 이동하는 내내 바이킹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며 인터넷 검색을 이어나갔다. 또 다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샤브샤브 바이킹은 우리에게도 굉장히 친숙한 모습이었다. 음식 앞에 적힌 이름표가 일본어였다는 점을 빼면 한국의 샤브샤브 뷔페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다만 조금 달랐던 점으로는 우리나라의 샤브샤브와 달리 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아마 맹물로 추정되는 물을 사용해 비교적 샤브샤브의 맛이 심심했다. 간장의 맛을 더한다 해도 한국인의 입맛엔 약간 싱거웠다.(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식 샤브샤브는 대부분 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배추나 표고 등의 야채를 먼저 넣어 국물을 우려낸 후 고기를 대쳐 먹는 것이라고 한다. 토모카와 시호가 약간 서툴렀던 것 같다.게다가 우리가 밥을 먹었던 바이킹은 사실 흑돼지 샤브샤브 전문점이었다고 한다, 우리야 뭐 살아있는 돼지를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알 수 없었지만) 뷔페, 아니 바이킹의 메뉴는 오코노미야끼부터 가라아게,‘한국식 불고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과 음료가 있어 다양한 맛과 종류의 일본음식(과 약간의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샤브샤브 바이킹에서 배를 충분히 채운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식당 근처의 텐몬칸으로 향했다. 텐몬칸은 과거 큐슈 제 2의 번화가로 불릴 만큼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가고시마 시내 최대의 번화가였다. 현재는 가고시마 시내에 생긴아뮤플라자이온몰등에 밀려 명성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대략 한국의 국제시장 정도를 생각하면 될 듯하다. 실제로도 시장 같은 분위기인데다가 지붕이 덮여있어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텐몬칸에 위치한 게임센터에 방문해 말로만 듣던 스티커 사진을 직접 찍어보았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로 체험해본 우리는 일본 스티커 사진 기계의 어마어마한 보정기술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각국의 학생들과의 시내 관광을 마친 우리들은 숙소로 들어와 다음날 히가시고교에서 열릴‘4개국 학생 면담회의 리허설을 진행했다. 우리교포이신 히가시 고교의 한국어선생님께서 동시통역을 해주신 덕분에 원어민의 빠른 일본어도 큰 어려움 없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간단한 리허설 끝에는 젠카 라는 간단한 놀이를 배웠는데, 우리나라의사람 수대로 모이기놀이나강강술래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아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히가시고교의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모두로얄 호스트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 메뉴를 각자 선택할 수 있게 해주셔서 자유롭게 먹고 싶은 음식과 디저트를 시켜 먹었다. 일찍이 서양의 식문화를 접해 이를 일본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킨 일본의 양식 전문 레스토랑답게 음식의 퀄리티가 매우 훌륭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우리 모두가 탄성을 지를 정도였다. 함께 제공되었던 음료와 커피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단 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한국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코카콜라 프리스타일이란 기기로 코카콜라 사의 여러 가지 음료를 한 기계로 마실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신기했다. 또한 후식으로 먹었던 파르페 또한 매우 부드럽고 달콤했다. 사실 이로얄 호스트가게가 숙소로부터 꽤나 떨어진 거리에 있었던지라 식당으로 걸어서 이동할 때 국적과 나이를 떠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투덜대었는데, 오히려 식당으로/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여러 나라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 결론적으론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우린 그 덕에 태국 학교의 학생들과 많이 친해져 일본을 방문하는 내내 태국 학생들과 굉장히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후 태국 친구들과 숙소에서 밤새 놀았던 일도 있었지만 이것은 다음날 이야기이므로 생략. 또 이 이동시간이 나에게도 꽤나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식당으로 가는 길 주변 시내의 건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단독 주택들과는 다른, 담장의 부재와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최대한의 편의를 추구하려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여튼 맛있는 점심을 먹은 우리는 다음날 히가시고교에 방문하여 많은 일본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모더니즘 양식의 주택. 양옆의 건물들과의 사이에는 아주 작은 틈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건물 상층부와 우측면은 일본식 아파트와 연결되어 최대한의 공간 활용을 의도한 듯했다. 단순한 직선만의 집합을 사용하여 자칫 지나치게 서양식 모더니즘 건물로 보일 수 있었는데 건물 좌측 상부의 외부 순환 공간에 배치된 몇 그루의 작은 나무가 일본 고유의 느낌을 살려주는 중요한 포인트로 느껴졌다. 이동하느라 오랜 시간 바라보질 못했던 것이 굉장히 아쉬웠던 건물이다. 다음번에 가고시마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다시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다.)

3일차-히가시 고등학교에 방문하다

3일째 아침은 먹지 못했다, 모종의 이유로 우리 학교학생들 모두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쉽게도 맛있는 아침을 먹지 못한 채 히가시고등학교로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사실 이때의 택시도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일본 여행 때마다 경비를 아끼는 데에 급급했던 학생이 최소 수백엔 부터 시작하는 고급 이동수단을 사용할 여유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자동차에도 꽤나 관심이 있었던 나인지라 일본 상용 세단의 대명사인 크라운 컴포트 택시를 타본다는 건 너무나도 기대되는 일이었다. 한국의 택시기사님들과는 다르게 제복을 입으신 택시기사님의 모습은 왠지 모를 안심과 믿음, 신뢰를 불러왔다. 그리고 다른 자동차들 보다 부드럽게 세팅된 일명물 서스펜션은 도로의 거침을 무시하며 부드럽게 우리를 히가시고등학교로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히가시고등학교의 첫 인상은크다였다. 히가시고등학교를 직접방문 하 기 전 구글 어스 지도로 보았을 때에는 크기가 작아 보였던지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또 산을 꽤나 올라와야 하는 높은 위치에 있어 주변 경관이 아주 멋졌다. 학교의 옥상에서는 저 멀리 거대한 사쿠라지마 화산의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우선 강당에서의 환영회가 있었다. 우리를 맞이해주러 모인 학생들의 일본 전통 춤 공연이 있었고, 이후 히가시고교의 댄스 동아리의 가고시마시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춤 공연이 있었다. 댄스 동아리라기에 우리 가야고의베리어스와 같은 아이돌 댄스를 선보여 줄 거라고 예상했던 나는 꽤나 당황했다. 하지만 동아리 학생 모두가 일본 전통 복장을 입고 전통 음악과 전통 춤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나라의 전통을 소개하는 목적을 가진 동아리가 있다는 점이 약간은 부럽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2016학년도를 마지막으로 폐부되어버린 가야고의 국악동아리울림새의 부재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강당에서의 환영회가 끝나고, 우리는 시청각실에서 4개국 학생들 간의 좌담회(서밋)가 있었다. 평소에 각국 학생들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여러 가지 질문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중국 학교의 연애금지 조항에 대해 굉장히 놀랐었고, 일본의 대학 진학제도가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놀라웠다. 또 각 나라마다 개학 시기가 다른 점도 신기했다. 다만 우리가 사전에 준비해갔던 질문들 중 여러 가지가 다른 학교 학생들의 질문과 겹쳐 질문하지 못한 점이 약간 아쉬웠다. 좌담회 이후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 도공 심수관 선생님의 후손인의 강연이 있었다. 선생님의 강연은 대략 민족과 국적, 혹은 인종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인류이기에 서로간의 사소한 갈등을 넘어 진정한 화합을 이끌어야한다.”라는 내용이었는데 평소에 스스로 생각보지 못했던 인류로서의 화합에 대해 새로이 생각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강연이 끝난 후 대기실에서 간단한 도시락을 먹고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휴식시간 중 우연히 올라가게 된 학교 옥상에서의 경치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멀리 있는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담겼는데, 일본식 단독 주택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는 마을은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일상적인 일본 마을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바라만 볼 뿐 직접 그 마을을 찾아가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나마 카메라 셔터 속에 담아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짧았던 점심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히가시고등학교에서의 체험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체험한 것은 히가시고교의 한국어 수업 시간,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한국어를 이렇게 일본의 학생들이 배운다는 점이 정말 신기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진 후 일본 학생들과의 자유로운 대화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많아 꽤나 놀랐다. 서로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 일본과 한국의 음식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눴다. 그러다 일본 학교의 한국어 교과서를 잠시 보게 되었는데, 철수나 영희가 사용할법한 교과서적인 말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가요인마법의 성을 부르며 히가시고교에서의 첫 번째 수업시간을 마쳤다. 두 번째로 체험한 곳은 히가시고등학교의 다도부, 동아리 부실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일반 교실을 동아리 시간동안만 동아리 부실로 사용하는 우리 학교와는 다르게 히가시고등학교는 각 동아리 별로 부실이 따로 있었는데, 다도부의 부실은 일본 전통 가옥의 내부와 같이 다다미를 깔아놓은 모습이라 전혀 학교의 교실처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에게 말차 내는 법을 시연해줬던 학생이 전통 양식의 기모노(인지 유카타인지는 모르겠다)를 단정하게 입고 등장하자 히가시고등학교의 전문적인 동아리 구성이 내심 부러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다도부 학생이 직접 내려준 말차에 수제 화과자(로 추정된다)를 곁들여 일본의 다도를 체험했다. 개인적으로 차를 굉장히 좋아하는데다 전통 가옥에서의 분위기마저 갖춰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좀 더 여유를 두고 차와 과자를 즐기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차를 원샷 해야 했던 것이 약간 아쉬웠다. 다도부에서의 체험이 끝나고 우리가 체험한 곳은 서예부, 일본을 방문하기 전 각자 고른 한자를 서예부 학생들이 직접 적어준 하이쿠가 적힌 부채에 붓으로 써보는 체험이었다. 이전에 붓글씨를 써 보신 것 같은 일본어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은 붓글씨를 노련하게 써내려가셨지만 붓글씨라곤 한번도 써본 적이 없는 우리는 연습용 종이만 수 십장은 버려가며 겨우겨우 한 자를 완성했다. 힘들었던 서예부 체험 이후, 마지막으로 체험한 곳은 꽃꽂이부 였다.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활동이다 보니 약간은 낮선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내가 한국에서 한두 번 보았던 꽃꽂이는 푸석푸석한 스펀지 비스무리한 곳에 꽃을 꽂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역이나 국가마다 다른 것 이었는지 이곳의 꽃꽂이는 물이 통할 수 있는 얇은 바늘이 촘촘히 박힌 화분에 꽃과 가지를 꽂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체험해본 꽃꽂이는 꽃과 가지들을 일자로 배열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것도 나름의 유파같은 것이 나눠져 각 파 마다 꽃과 가지를 배열하는 방식이 다른 듯 했다. 그렇게 꽃꽂이부에서의 체험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히가시고등학교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을 모두 마쳤다. 그리곤 우리학교의 파고라와 비슷한 곳에서 열린 히가시고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관현악단연주가 있었다. 우리학교에선 보지 못했던 트럼펫이나 튜바, 섹소폰, 클라리넷과 같은 전문적인 악기로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이후에는 태국 학생들의 무에타이 공연과 중국 학생들의 노래, 그리고 우리의 노래가 이어졌는데 나는 많은 학생들 앞이라 너무 부끄러워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그렇게 히가시고등학교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히가시고등학교의 학생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저 하루 동안 함께 지냈던 것만으로도 친해졌던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연신 기념촬영을 이어나갔다. 히가시고등학교에서 택시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자그마한 마을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는데, 다행스럽게도 카메라에 그 모습을 몇 장담을 수 있었다. 달리는 자동차의 창밖으로 보였던 일본식 단독주택들의 모습은 만약 다음에 또다시 히가시고교를 방문하게 된다면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안하더라도 걸어서 올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사쿠라지마 화산이 정면에서 보이는 해안가의 아울렛 같은 곳이었다. 30여분 정도 일본, 태국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쇼핑몰을 둘러보다 양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하는 중간 중간 히가시고등학교의 음악선생님의 일본식 비파 연주나 일본 전통 음악 공연이 있어 모두가 재미있는 식사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물론 피자와 스파게티, 치킨 등의 메뉴가 나왔던 식사도 훌륭했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태국 친구들과 한 방에 모여 낮에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나라에서의 이야기, 학교에서의 이야기,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간단한 놀이를 즐기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4일째 일정을 위해 모두 잠자리에... 들었어야 했지만 방에 돌아오자마자 골아떨어진 영호와는 달리 약간의 불면증이 있었던 나는 꼴딱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4일차-사실상 마지막 날, 가고시마의 명소를 방문하다

결국 4일째 아침도 먹지 못했다. 여학생들은 먹었다고 들었지만 나는 밤을 지새웠음에도 너무나 곤히 잠들어 있던 영호 덕에 4일차 아침도 공복으로 지내야했다. 다행히 전날 밤 먹은 간식 덕에 배가 크게 고프진 않았지만, 밤을 꼴딱 지새워 피곤에 절은 몸뚱아리를 이끌고 버스에 올랐다. 4개국 학생 모두가 단체로 이동해야 해서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한국 관광버스보다 천장이 낮아 천장 모서리에 머리를 자주 찍었다. 하지만 내부가 굉장히 깔끔해서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곤히 잘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에 대한 설명은 당시 잠을 자느라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가고시마현에 위치했다는 점과 우리가 방문할 만큼의 유명세, 그리고 생김새와 경치를 고려했을 때카이몬다케로 추정되는 봉우리가 훤히 보여야했던 해변가를 방문한 듯하다. 보였던이 아니라보여야했던이냐면, 우리가 방문한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카이몬다케로 추정되는 봉우리는 멀리 흐릿하게 윤곽만 겨우 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곳을 방문했던 학생들의 관심사는 카이몬다케보단 해변가에 우뚝 서 있던 고목에 매달린 한줄 그네에 쏠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곳이 카이몬다케를 보기 위한 해변이었다는 결론을 찾으며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 카이몬다케는 주변에 봉우리가 없어 홀로 우뚝 서 있는 후지산을 닮은 그 특유의 모습 때문에 사쓰마후지그러니깐 사쓰마 번(에도 시대에 가고시마현이 위치했던 국가의 이름)의 후지산이라 불릴 정도로 칭송받았던 모양이다. 안개 사이로 바라본 흐릿한 모습만으로도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결국 온전한 모습을 모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워 다음에 가고시마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들르고 싶은 곳 중 하나이다. 해변으로부터 출발한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일본 시골 주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시골 주택들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느낌의 주택들이었다. 그렇게 카이몬다케로 추정되는 봉우리가 보여야했던 해변 다음으로 우리가 방문한 곳은 한 신사였는데, 머리에 솥뚜껑을 이고 도리이를 통과한 다음 신사 본전에 있는 방울에 달린 줄을 흔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솥뚜껑 전설 외에는 그렇다 할 만한 특색도 없었을뿐더러 규모도 굉장히 작았던 신사라 당시에도, 그리고 이 보고서를 쓰기 직전까지도 나는 이 신사의 이름을 알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지 1분만에 이 신사를 발견했다. 이 신사의 이름은가마후타 신사’, 솥뚜껑 전설로 잘 알려진 곳이었단다. 신사 뒤로 나있던 작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니 시원한 바다가 펼쳐졌다. 땅이 현무암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암석으로 이루어져있었는데, 군데군데 보이던 물웅덩이에는 밀물이 들어왔을 때 갇힌 듯한 물고기들이 해엄치고 있었다. 슬슬 허기가 질 시간대가 되자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4일째 점심을 먹은 곳은 우리나라의 산장과 같이 산속에 있는 식당이었다. 이 식당 역시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검색을 시작한지 1분 만에 이름을 발견했다. 이 식상의 이름은이부스키 토센쿄 소멘나가시’, 일본 현지인들과 관광객들 모두에게 유명한 식당이라고 한다. 주 메뉴는 간장에 적셔먹는 소면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신기한 구조의 기구를 이용해 면을 차갑게 식혀 먹는 개념이 신기했다. 동그란 어항처럼 생긴 기구 속에서는 물이 급류처럼 빠르게 흘러가는데, 기구 가운데에 놓여져 있던 소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흐르는 물속에 담군 다음 차가운 물이 소면을 차갑게 식혀줬다 싶으면 젓가락으로 소면을 건져 간장에 찍어먹는 것이라고 한다. 찬 물에 면을 식힌다는 개념이 한국의 비빔면을 끓여 먹는 방법과 비슷해선지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간장에 와사비를 듬뿍 풀어먹으니 와사비의 알싸한 맛이 코끝을 마구 찔러댔다. 4일 동안 김치는커녕 단무지도 먹지 못한 탓에 매운맛, 시원한맛에 극도로 굶주려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 단비와도 같이 등장한 와사비에 심취한 나와 영호는 기본으로 제공된 와사비 모두를 간장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히가시고교 학생 타나카는 연신 스고이를 외쳐댔고, 우리 맞은편에 앉아계셨던 중국 카이문 고교의 생물 선생님도 우리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셨다. 소면과 함께 제공된 메뉴는 정체불명의 생선 소금구이,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던 오니기리, 그리고 단무지 몇 점이 있었다. 생선 소금구이는 여러 의미로 굉장했다. 우선 굉장히 맛이 좋았고, 굉장히 짰으며, 굉장히 자괴감이 들게 만들어줬다. 내 입속에서 바삭거리며 씹히는 것이 맛있게 구워진 생선인지 소금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 생선의 살아생전 모습이 머리부터 꼬리 끝 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생선의 흐리멍텅한 눈을 마주하며 생선을 살을 바르자니 굉장한 자괴감이 들었다. 오니기리는 속에 무엇인가 들어있을 것을 기대하고 크게 한입 베어 물었지만, 흰 쌀 속의 공허함에 당황하며 재빨리 생선 한 점을 입안에 넣었다. 곁들여진 단무지는 굉장히 달았다. 이날 이전까지 간토지방과 간사이지방의 일본 요리만 먹어보았던 나는 간토와 간사이에 비해 덜 짜고 단맛이 강하다는 가고시마의 음식에 대해 약간의 걱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 3일간 가고시마의 음식을 먹으며이정도면 괜찮은걸?’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단무지는이것이 가고시마다라는 느낌으로 극강의 단맛을 내 입에 선사해줬다. 우리나라 중국집의 단무지를 기대했던 나와 영호는 조용히 단무지를 그릇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그런데 5~6명씩 앉아 있던 테이블마다 제공된 소면의 양이 여학생들 에게는 좀 많았는지, 여학생들 테이블에서 남은 소면이 태국 남학생들의 테이블과 우리 테이블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아침을 거른 영호는 배가 많이 고팠던지 허겁지겁 소면을 흡입했으나 어마어마한 양의 소면을 혼자 처리하기는 좀 무리였다. 내가 산더미처럼 쌓인 남은 소면을 보며 아까워하고 있을 때 즈음, 일본어 선생님이 남은 소면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소면을 담아뒀던 바구니를 들추면 하수구 비슷한 구멍이 있었는데, 그 속으로 남은 간장과 소면을 넣으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내려간 소면은 식당 옆에 위치한 연못 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먹는다고 알려주셨는데 먹다 남긴 음식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처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이부스키 토센쿄 소멘나가시에서의 맛있었던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가고시마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한곳인 모래찜질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의 내부는 우리나라의 리조트와 비슷했는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건물 내의 몇몇 공간이 일본 전통 가옥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크기를 늘린 듯 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온천을 마친 방문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공간에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사용해 방문객들에게 일본만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럽게 전하려는 의도가 돋보였다.

본격적인 온천을 즐기러 모래찜질장(?)에 들어서니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밭과 그 너머 넓게 펼쳐진 바다가 우릴 반겼다. 아쉽게도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여행으로 지친 피로를 풀기엔 최적의 풍경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래찜질 방식은 지정된 얕은 구덩이에 수건을 깔고 누우면 직원들이 삽을 이용해 뜨거운 검은 모래를 우리 몸 위에 덮어 주는 방식이었는데, 워낙 가고시마의 날씨가 온화하다보니 금세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위치가 바닷가 바로 옆이라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따뜻한 모래 속에서 15분 정도 찜질을 즐기고 바로 옆에 위치한 온천에 들어가 몸에 묻은 모래를 씻어내며 온천을 즐겼다. 이때 생각지도 못한 불상사가 생겼는데, 내가 사용하던 스마트폰이 다른 스마트폰들에 비해 뛰어난 방수 성능을 가지고 있는지라 안심하고 스마트폰을 가진 채로 온천 안에 들어갔더니, 아뿔싸. 바닷가 바로 옆의 온천이라 그런지 온천물에서 굉장히 짠 맛이 났다. 제아무리 뛰어난 방수 기능을 가진 폰이라 할지라도 염분이 들어간 물에 닿아선 안된다는 것이 상식, 나와 영호는 재빨리 온천을 빠져나와 수돗물로 몸과 폰을 행군 뒤 옷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이미 간고등어 마냥 소금물에 절어버린 나의 폰은 이후 귀국할 때 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다행히 재빨리 유심과 메모리카드를 분리하여 일본에서 찍은 사진마저 모두 날아가는 불상사는 막았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큰 손실이 아닐 수 가 없었다. 때문에 주변사람들은 잘 몰랐겠지만 이번 일본 방문의 마지막 날 까지 기분이 심히 꿀꿀한 채로 버텼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스마트폰을 한 대 더 가져갔던지라 남은 기간 동안 그 폰으로 사진과 연락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사고가 있었던 모래찜질과 온천욕을 마치고, 우리는 숙소로 잠시 돌아와 휴식시간을 가졌다가 다 같이 걸어서 가고시마시 쇼핑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어뮤 플라자로 향했다. 늦은 밤이 아닌 주간에 가고시마 시내를 둘러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가고시마시가 꽤나 작은 도시일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부산의 서면 만큼이나 높은 빌딩이 많은 번화가를 보곤 살짝 놀랐다. 간결함을 중시하는 일본 모더니즘 양식답게 자로 잰 듯 반듯한 형태의 건물이 많이 보였다. 숙소로부터 30분 정도 걸어 아뮤플라자에 도착한 우리는 여학생들과 남학생들로 얼추 나누어져 아뮤플라자 내에서 잠시 쇼핑을 즐겼다. 우리와 함께 돌아다녔던 태국 친구들은 K-POP에 관심이 많았는지 아뮤플라자 내에 위치하고 있었던 K-POP 전문 가게에서 한참동안이나 머물렀다. 일본에서K-POP 전문 가게를 만나니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옆에 선 한국의 매운 과자나 매운 라면을 팔고 있었는데 확실히매운맛의 한국이란 이미지가 강렬한 듯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너무나도 흔하고 일상적이게 느껴지던 제품들이 일본에서 꽤나 비싸게 팔리고 있단 사실이 조금 재밌기도 했다. 그렇게 아뮤플라자에서의 쇼핑을 마친 우리는 히가시고교의 학생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눠야 했다. 쇼핑을 마치고 모이기로 했던 장소에서 만난 여학생들은 이미 울음을 터뜨렸었는지 눈가가 퉁퉁 부어있었다. 태국 친구들과는 다음날 까지 함께 지낼 수 있었던지라 태국 친구들과 쇼핑을 나섰던 우리는 크게 체감하질 못했는데, 이날 해어져야 했던 일본 학생들과 쇼핑을 다녔던 여학생들은 쇼핑 내내 이제 곧 해어진다는 사실에 슬퍼했다는 것 같았다. 민족이나 국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심수관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관심사도 다르며 살고 있는 나라도, 가치관도 달랐던 우리는 지난 4일간의 일정동안 이렇게 해어짐에 눈물을 흘릴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일본 학생들과의 사진 촬영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날, 나와 영호가 처음으로 만나 가고시마 시내를 구경시켜줬던 토모카와 시호는 우리와 해어진다는 사실에 특히나 더 서운해 했다. 우리는 인스타그램과 라인을 통해 연락처를 교환한 뒤, 꼭 다시 연락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해어졌다. 일본 학생들과 해어진 뒤 아뮤플라자에 위치한 바이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나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가 숙연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조용히 저녁을 먹은 후 우리끼리의 쇼핑을 나서려던 참에 이번 일본 방문 내내 히가시 학교의 대표로 활동했던 타나카가 우리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우리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 쇼핑을 함께 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까지 배웅해준다는 타나카에게 너무나도 큰 고마움을 느꼈다. 저녁을 다 먹은 우리는 타나카와 아뮤플라자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즐겼다. 그러면서 타나카와 미처 나누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더 친해짐을 느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장난, 연애이야기, 이렇게 여학생들의 쇼핑을 따라다니는 건 사실 조금 지루하다는 등, 타나카를 제외하면 일본 친구들은 모두 여학생들이었던지라 남학생들만의 공통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던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나는 아뮤플라자의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전체적으로 김해 신세계 백화점과 비슷하게 복층 구조임과 동시에 가운데 홀을 뚫어놓은 구조가 특이했다. 특히 이런 종류의 쇼핑몰에서는 상행 에스컬레이터와 하행에스컬레이터가 서로 반대 방향에 위치하는 것이 대다수인데, 이곳에서는 상행과 하행 에스컬레이터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남학생 여학생끼리의 쇼핑을 마치고 모인 우리는 타나카에게 작은 선물을 전해주고 숙소로 돌아가는 전차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 뒤로 보이는 아뮤플라자와 아뮤플라자의 상징인 관람차, 아뮤 휠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우리는 타나카와 함께 전차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탔던 전철은 김해의 경전철이나 부산의 지하철과는 달리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운행되는 노면 전차였는데, 우리나라에선 구한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보니 가고시마 사람들에겐 지나치게 평범해 보일 전차가 우리에겐 굉장히 신기하게 보였다. 전차를 타고 가던 도중 좌석에 앉아 계시던 한 일본인 남성분이 말을 걸어오셨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온 국제교류 학생이라고 소개를 해드렸더니 한국에서 이곳 가고시마까지 왔냐며 놀라셨다. 그렇게 전차를 타고 숙소로 도착한 우리는 타나카와의 작별인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내일이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이 몰려왔다. 서운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태국 친구들과의 쇼핑에 나섰다. 목적지는 숙소 근처의 돈키호테와 주변 편의점. 태국 친구들이나 우리나 일본어가 서툴기는 마찬가지라 영어로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나누었는데 꽤나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했다. 돈키호테나 편의점에 있는 물건은 우리에게나 태국 친구들에게나 처음 만나는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물건들이어서 우리는 밤새 도전적이며 과감한, 때로는 무리수의 쇼핑을 이어나갔다. 사실 나와 영호의 경우, 미리 눈여겨두었던 간식거리 몇가지만을 챙겨 쇼핑을 마쳤는데, 우리학교 여학생들과 태국 여학생들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쇼핑을 이어나갔다. 그들을 따라다니기에 지친 나와 영호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이미 그곳엔 태국 남학생들이 쓰러져있었다. 태국 남학생들도 여학생들의 굉장한 쇼핑 시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의 쇼핑을 마치고, 양손 가득히 돈키호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쇼핑백을 들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있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쇼핑한 물건들을 가방에 쑤셔 넣으며 짐을 다시 챙겼다. 오늘도 일찍 잠에 든 영호와는 달리 아쉬운 마음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 나는 결국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도 꼬박 지새우고 말았다. 그 덕에 새벽녘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약간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돈키호테에서 사온 컵라면을 먹으며 바라본 아직 미처 밝지 못한 푸른빛 여명의 구름 틈새로 내리쬐는 붉은색의 태양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이 다 되어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우리 숙소에서도 사쿠라지마 화산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첫날부터 숙소 창밖으로 사쿠라지마 화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슬퍼하고 있었는데 창밖으로 조금만 고개를 꺼내니 너무나도 잘 보여 왠지 사쿠라지마 화산에게 속은 기분이 들었다.

5일차-가고시마에서의 마지막 날, 한국으로의 귀국

한밤동안 잠을 자진 않았다, 고로 마지막 날 만큼은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잠시 방심했었다. 지난 몇일 동안 연이어 잠을 자지 않았던 탓인지 7시쯤 되었을 때 나도 모르는 새에 깜빡 잠이 들어 버렸는데, 요란스레 울리는 인터폰 소리에 다행히 잠에서 깨어났다. 이미 시간은 로비에서 모이기로 약속했던 8시를 넘겼었고, 우리를 찾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을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자연스레 대답했다, 그리곤 아직까지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던 영호를 급히 깨워 짐을 챙기고 로비로 향했다. 로비에 도착하니 여학생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또다시 속은 느낌,‘조금만 더 여유부리며 내려올 걸이란 생각이 조금, 아니 많이 들었다. 로비에서 모인 우리는 태국 친구들과의 작별인사를 나눴다. 아무래도 남학생들 끼리 친해지다 보니 나와 영호는 특히나 아쉬움이 짙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처를 교환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첫 번째 날 우리를 숙소까지 대려다주셨던 히가시고교의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가고시마 츄오역으로 떠났다. 시간에 쫓겨 가고시마 츄오 역에서 황급히 열차 플랫폼으로 올라간 우리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는데, 우리가 타려고 했던 열차가 주말에만 운행하는 열차였던지라 다음 열차를 20여분 가량 기다려야했던 것이다. 시간이 부족할까 허둥지둥 달려왔던 우리는 그렇게 플랫폼에서 의도치 않았던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뚫려있는 플랫폼 지붕 사이로 어제 봤던 아뮤휠이 보였다. 잠시 후 도착한 신칸센을 타고 하카타역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가고시마 츄오역이 기차가 최초로 출발하는 역이라 우리는 자유석이었음에도 처음부터 편히 앉아 갈 수 있었다. 나는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하카타역에 도착한 우리는 하카타역 락커룸에 짐을 넣어두고 하카타역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라멘집,‘이치란 라멘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이치란 라멘은 일본 전국에 체인점을 두고 있는데, 그 본점은 이곳 후쿠오카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들른 곳은 본점은 아니었지만 본점 못지않게 맛이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나라의 라멘집과는 다른 모습에 꽤나 놀랐다. 독서실과 같이 각자의 테이블 사이에 칸막이가 쳐져있어 옆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라멘을 먹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었다. 주문서에서는 면의 익힘 정도, 매운맛 스프의 양, 추가 메뉴 등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선 한국인은 매운맛, 나와 영호는 매운맛 스프의 양을 권장량의 2배로 선택했다. 그리고 꼬들꼬들한 면발을 좋아하는 나는질김을 선택했다 이윽고 나온 라멘의 맛은 그야말로 일본 라멘의 진수를 보여줬다. 지나치게 느끼하지 않은 돼지 육수, 부드러운 차슈, 꼬들꼬들한 면발. 너무나도 맛이 있었다. 하지만 아침을 먹지 않았던 나와 영호에겐 약간 모자란 양이었고, 우리는 100엔을 추가하여 면을 조금 더 추가해 먹었다. 추가한 면의 익힘 정도는 매우 질김을 선택해봤는데, 정말 쉽게 끊기지 않을 정도의 면발이었다. 이치란 라멘에서의 식사를 마친 우리는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기 전, 하카타역에서 약간의 쇼핑을 하러 하카타역으로 향했다. 첫 번째 날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하카타역 주변의 거리는 굉장히 세련된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여있었다. 커튼 월 양식의 건물도 많이 보였지만, 건물마다 각자의 특색을 표현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하카타역에 위치한 다이소에서 갖가지 간식거리와 기념품을 샀다. 영호는 친구들에게 나눠줄 곤약젤리를 말 그대로 쓸어 담아왔으며, 나는 처음 보는 간식거리 몇 가지를 챙겼다. 다이소에서의 쇼핑을 마친 우리는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45일간의 국제 교류 활동이 끝났다.


국제 교류 활동 후기


이번 국제 교류 활동을 떠나기 전, 나는 나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관광객으로써의 내가 보지 못했던 평범한 풍경, 평범한 일본 학생들의 일상, 내가 아직 가보지 못했던 가고시마의 풍경 등. 그러한 것들을 카메라 셔터 속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알고 싶었다. 일본과 태국, 중국 등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고, 서로의 국가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것 들을 알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이번 국제 교류 활동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내가 경험하고 배우고 싶었던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번 활동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리라. 이에 대해서, 일본에 있는 내내 해보았던 생각이 한 가지 있었다. ‘내가 만약 지금, 이 시간에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아마 그랬다면 시험기간이니 만큼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의 수업은 중요하다. 특히 시험 기간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약간 다르게 생각했다. 몇 일간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데에 나의 시간을 걸고 싶다고. 이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냥 왠지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었다. 일단 한번 부딪혀 보자고. 시험 기간이란 생각은 잠시 지워버리고, 내가 그토록 원하던 활동을 하자,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해보자. 성적을 극도로 중요시 하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들으면 기절초풍하실 만한 나의 다짐을 나의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내가 원하는 바를 보고 듣고 배우고 오라며 이번 국제 교류 활동을 떠나는 나를 적극 지원해주셨다. 그 덕에 나는 이번 활동에 참가할 수 있었고, 역시나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번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이 어디에 쓰일지는 알 수 없다. 일본에서 마주한 여러 건물로부터 영감을 받은 내가 건축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일본에서의 사진 촬영을 통해 사진의 매력에 빠지게 된 내가 사진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쩌면 이번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이 아무런 곳에 쓰이지 않고 아쉽게 잊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활동을 떠나지 못했다면 얻을 수조차 없었을 경험이기에, 또 그만큼 소중한 경험이기에. 소중히 간직할 이 경험을 언젠가 나의 미래를 위해 현명히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결코 얻지 못했을 만한 소중한 경험을, 또 짧은 시간동안의 만남이었지만 더더욱 짧은 시간 만에 사귀게 된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여러 인연들을. 첫 번째 날 우리를 대려다 주셨던 선생님들도, 가고시마 시내를 함께 돌아다녔던 토모카와 시호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던 태국, 중국 친구들도, 45일간의 일정 내내 우리를 도와주셨던 히가시고교의 선생님들도,전차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아저씨들도, 마지막 까지 우리를 배웅해줬던 타나카도, 그리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 모두. 내가 이들을 잊지 않고 있고, 그들 또한 나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준 인연. 그 어느 것도 이번 국제 교류 활동이 아니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번 국제 교류 활동을 통해 앞으로를 향한 새로운 한걸음을 내딛기 위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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